마크 앵글러
편집자주 지난해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노동조합과 서울대 학생들이 연대하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다. 오히려 시설관리 노동조합의 파업에 따라 대학내 쓰레기 처리며 급식에 문제가 생기자 학생들은 오히려 이를 불만스러워했던 목소리조차 적지 않았다. 이에 반해 수위와 식당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최저생활임금 쟁취투쟁과정에서 하버드의 대학생들과 지역사회와의 연계 그리고, 주로 하버드 학생들로 구성된 활동가들의 21동안의 최저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점거농성을 통해 승리로 마감했다. 또한 이 글은 최근 하버드대 당국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총장실 점거농성이 왜 세계화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미국 전역의 진보진영에 중요한 승리를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다. 미국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에서 비록 본지의 편집방향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미국내에서 그것도 하버드에서 진행된 점거투쟁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아 이 글을 개제하게 되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하버드대 당국은 대학 노동자들의 생활임금 문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당국이 위탁한 한 보고서는, 편의적인 발상에서 수위와 식당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 생계비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에 대하여, 수당은 약간만 늘리도록 권고했다. 대학총장 닐 루덴스타인은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대학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에 더하여 시간당 10달러 25센트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40여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메사추세츠홀의 사무실 안으로 몰려왔을 때, 그의 응답은 “우리는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01년 5월 8일 목요일, 농성단은 행정당국으로부터 파격적인 성과를 쟁취한 후 그들을 지지지원 해 주었던 수 백명의 동지들의 환호를 받으며 건물을 나왔다. 그들은 3주간의 점거농성을 전개하는 동안, 보스톤 지역사회의 지지를 얻어냈고, 전국의 언론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서의 삶의 중심에 놓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하여 보도하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하버드는 완전한 항복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협상안에 동의했다. 대학은 하도급에 대한 지불유예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것이며, 건강 수당 문제에 대하여 즉시 입장을 표명할 것이다. 하버드는 시급히 호텔-식당노조, 국제서비스노조(SEIU)와 계약 협상을 진척시키겠다고 확약했다. 하버드는 협상의 소급적용 -점거농성의 종료와 동시에 임금인상이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자발적으로 수위들의 임금을 인상할 것이다. 협상 타결이 곧바로 모든 노동자들의 독신자 최저생활임금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노동자와 학생대표가 함께 하고 교수단의 지도를 받는 위원회가 이를 결정하고 최종적으로 임금 인상분을 제시하게 된다. 이것은 하버드에 일말의 탈출구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운동의 지도적 운동가였던 에이미 오프너는 “6개월 내지 일년 안에 최저생활임금에 효력을 주는 협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대로 된다면 말이죠. 물론 우리는 제대로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 이 운동은 분명 그럴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점거투쟁은 하버드의 핵심 학생활동가들 뿐만이 아닌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성공했다. 노동자들은 거대한 집회를 열었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농성에 동참하기 위해 하버드 근처에 생긴 천막농성장으로 왔고, 새로운 힘을 얻은 학생들은 보통 학기말에 생각하기 힘든 방법으로 움직였다. 오프너는 “상황이 전개되자 사람들은 캠페인을 지지하러 15일간이나 나오더군요”라고 말한다. 생활임금 쟁취를 위한 농성에 대한 지지지원이 점차 확산되어 갔다는 사실은, WTO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에 대항하는 힘이 지역적 차원의 동일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하버드에서의 저항에 좀더 폭넓은 중요성을 부과하는 것은 최저임금 문제를 통해 형성된 바로 그 ‘연합의 형태’인 것이다. 점거농성은 지난 날 형성된 독특한 노학연대의 필요성을 실증해주고 있다. AFL-CIO 위원장 존 스위니의 지도 하에, 노동조합의 재개 방안의 일부로서 학생운동가와의 연계에 힘써왔다. 조직 아카데미를 통해 AFL-CIO은 신규 조직원을 모집해왔고, 1996년 이례로 “유니온 섬머”라는 인턴쉽 프로그램을 통해 수천 명의 학생운동가와 젊은 노동자들을 모집해왔다. 피복노동조합인 유나이트는 조직적 지원을 통해 저임금착취공장(sweat shop) 반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학생들에게 전적으로 역량을 투여했다. *** 이러한 투자는 가장 가시적으로는 대학교에서 일어난 건물점거운동에서 성과를 보였다. 지난 2년간 저임금착취공장 반대운동은 미시간대, 아이오와주의 서니-알바니대, 위스콘신주의 웨슬리안 대, 켄터키 대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작년 존스홉킨스대에서 진행된 수위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17일간의 점거농성은 하버드대학생의 매사추세츠홀 점거의 전조가 되었다. 하버드대의 생활임금쟁취 운동은 노동운동 확장의 산물로 탄생한 ‘진보적 학생노동운동(Progressive Student Labor Movement, PSLM)’이라는 그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점거농성 중 총장 사무실 안에 들어간 세 명의 학생들을 비롯하여, 이 그룹의 1997년 창설멤버 들 몇몇은 유니온 섬머의 졸업생들이었다. 하버드의 사례는 생활임금을 이슈로 내건 주요한 투쟁 중 학생동력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투쟁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내는 데에는 노동조합이 오랫동안 앞장서왔다. 첫 번째 중요한 승리는 1994년 볼티모어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지역사회와 노동운동가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명하는 임금 법안을 쟁취했다. 그 이후로 50여개의 최저생활임금 기준이 미국 곳곳의 도시들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현재 75개의 도시에서 진보적인 단체들이 법안투쟁을 계속하는 중이다. 생활임금쟁취 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학생들을 위한 조직화 프로그램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다 광범위한 진보진영과의 연계를 위한 노동운동의 전략의 한 부분이다. 플로리다 국제대학 노동연구소의 소장이자 생활임금 쟁취 투쟁의 베테랑인 부루스 니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AFL-CIO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지역사회 내에 보다 강력한 노조를 건설하고, 복지를 보편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노동운동을 창조하는 과정이 됩니다.” *** 그것이 바로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AFL-CIO가 대학 당국과의 상을 돕기 위해 최고의 변호사를 파견했던 이유이며, 존 스위니 위원장이 지난 주말 대규모 시위에서 내빈석에 함께 서있던, 그리고 노동계의 지도자들이 캠퍼스로 돌아와 메사츄세스 홀을 떠나는 시위대를 위해 친히 문을 지키고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AFL- CIO가 보여준 의욕적인 모습은 그들이 지역사회에 기반한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지역노조에 끊임없이 투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버드에서 수십 명의 학내노동자들은 시위대를 향해 연설했으며 언론에 감사를 표명했다. 호텔-식당 노조원들은 학생들을 문책하는 내용을 담는 어떠한 협상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표 했다. 생활임금 법안이 주요하게 지방 정부를 겨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법은 경영주들의 양도세를 인하했고, 하도급 계약의 적용 범위를 넓혔다. 존스홉킨스대와 하버드대에서의 학생들의 시위는 개별노동자들을 포섭하여 투쟁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거의 2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기부금은 하버드 점거농성에 있어서 적절한 타깃이었다. 즉 학생들은 특권을 지닌 대학과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비참한 대우를 대비시킴으로써 언론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 반세계화운동이 촉발되었던 것과 유사하게, 또한 노동자와 환경주의자들 간의 ‘적-녹’동맹과는 또 다르게, 최저생활임금운동은 일상에서 모두를 연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개혁을 위한 지역조직연대(ACORN), 국제서비스노동조합(SEIU), 그리고 홈리스연합은 시카고의 임금투쟁을 끌어나가고 있다. 호텔 노동자, 환경주의자, 세입자권리운동가들이 산타모니카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교도그룹, 그레이 펜더, 사회봉사단체, 그리고 제3당 지지자들이 어디서나 이에 동참해왔다. 주목할 점은, 생활임금쟁취 운동이 정치적 변화를 꾀하는 전술로써 시민불복종과 대중투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시카고의 대학점거농성은 만오천명이라는 대단한 군중을 그 행렬에 동참시켰다. 그리고 호텔-식당 노동조합 노동자들은 산타모니카켐페인 시위중에 교통방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었다. 하버드에서의 점거농성은 캠퍼스를 생활임금쟁취 운동의 확장을 선도하는 장소로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학생과 노동자가 함께 거리로 나아간 시에틀에서와 같은 대중투쟁을 거치면서 노학연대는 강화되었다. 특히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자신의 운동이 지역적 운동으로 안착화 되도록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두 그룹의 상호작용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 많은 부분에서, WTO를 향한 저항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뒷마당에서 일어나는’ 기업의 권력 남용에 대한 대규모 전투에 의해 힘을 얻고 고무되는가에 달려 있다. 저임금노동착취공장(sweat shop), 유기농, 복지개혁, 교도소 확장, 군축 등을 이슈로 하는 운동을 조직하는 활동가들은 모두 지역사회와 국제적 사안을 연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활인금은 그러한 연계를 만들어낸 이슈의 중요한 예이다. 학생들은 점점 기업화 되어 가는 대학에 현존하는 극도의 불평등을 공론화시켰고, 더 나아가 빈곤을 조장하는 저임금은 이곳에서도, 해외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갭(GAP)社가 엘살바도르의 저임금착취공장에서 의류를 생산하도록 충동하였던 것과 동일한 이유로, 대학은 하청계약과 저임금 기업을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부당함에 직면하여 성장하는 생활임금쟁취 운동은, 세계화가 획책하는 ‘밑바닥을 향한 경쟁’에 저항하는 기층운동의 중요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미 통과된 임금 법안은 지난 십년동안의 진전된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생활임금쟁취 운동은 구체적으로 빈곤한 노동계층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실용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막 결집하여 변화를 일궈내기 시작한 그룹으로서 좌파 연합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몽상적이다. 대학당국이 노동자들에게 알맞은 임금을 지급하는 정의에 눈뜨도록 만든 것은, 갑작스런 깨달음이 아닌 ‘힘’이다. 학생들의 운동이 생활임금이라는 이슈가 재고되도록 하였고, 지역사회의 놀라운 연대가 행정당국의 구태의 융통성 없는 교섭태도에 자극을 주었다. 분명한 것은, 지역사회와 노동자 연맹이 함께한 성공적인 점거농성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으로 이어가기를 원하는 다른 학교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